리얼 서바이벌 가이드 공중도시
단채널 영상_26분 27초
2019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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공중도시 엔지니어의 서문
내 아파트는 마포구와 용산구 사이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. 다섯 갈래로 차가 다니는 길가의 소음과 겨우 몇 걸음 차이로 멀어져, 불쑥 솟은 대기업 브랜드의 배다른 형제들을 어깨 너머에 두고 잊혀진 작은 단지다. 나는 30년 전 6층 건물로 지어진 이곳의 6층에 산다. 복도에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점은 종종 곤란함을 야기했지만 그만큼 덜 들고 나며 삶이 싱거워지는 데 약간의 구실이 되어주었다.
10년 전쯤인가 나는 담배를 끊었다.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종종 담배를 피운다. 내가 그 활동을 위해 오르는 옥상은 아마 이 아파트에서 손꼽히게 멋진 곳 중 하나일 것이다. 여러 이유에서 거의 잊힌 이곳을 차지한 건 작은 새들, 주인을 알 수 없이 분기별로 순환하는 이불 빨래, 그리고 이웃한 다른 옥상들이 만드는 어떤 정취다. 이 도시엔 하루 종일 쳐다봐도 질리지 않을 만큼의 옥상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풍경은 값비싼 마천루 어느 층의 레스토랑이 보여주는 건조한 경관과는 사뭇 다르다. 롯데타워를 사방위의 오른쪽에 두고, 남에서 북으로, 강변에서 내지로, 달동네와 반지하를 부수며 전진하는 필로티의 파도. 그리고 그 사이 점점이 찍힌 녹색 사각형들은 내일 이 도시의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말해주는 부표다. 나는 그 모습이 제멋대로 불어난 150마리의 개와 살게 된 어느 가난한 노인의 거실 같아서, 근대 건축의 규율에서 새로운 이상을 찾았던 천재들이 필로티와 옥상으로 뒤덮인 서울을 내려다보면 어떤 기분이 들지를 상상해 보곤 했다. 아트에 일가견이 있다는 어느 사업가는 최근 그 복판에서 웬 폰트를 만들고 있는데, 개가 151마리가 되든 152마리가 되든 어차피 그게 그것일테니 이런 소동은 다 얼마나 멋진가 싶기도 했다.
옥상과 옥상 사이에는 아무런 링크가 없고 우린 꽤 멀리 떨어져 있다. 그렇지만 마주 선 그들이 비교적 가깝게 느껴지는 날도 있는 법. 오랜만에 먼지가 개여 맑을 때면 다 부서져가는 장독대, 플라스틱 목마, 담배를 피우는 여자나 남자들은 더 짙은 녹색으로 빛난다. 옥상에는 이따금 재개발에 미적지근한 조합원이나 공무원들을 규탄하는 현수막이 붙었고, 그것만큼은 다른 옥상이 아니라 아래를 바라보아야 했다. 나는 그 옆에서 비로소 수평의 파사드가 수직으로 중첩된 이 허공의 뿌리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. 모든 공중의 것들은 대지와 연결되어 있다. 우리가 점에서 점으로, 좌표에서 좌표로 나는 것은 더 잘 걷기 위함이다. 땅 위에 솟은 것들은 으레 그런가? 계속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할 때, 그래서 사람은 높은 곳에 오르는가?
윤율리 라이팅 코퍼레이션